[Weekly BIZ] 李錦記 이금기
125년 비결은 '이혼금지, 바람금지, 결혼 빨리' 가족헌법
입력 : 2013.04.12 15:49
全 세계서 하루 100만병 팔리는 '이금기 소스'… 리만탓 명예회장 인터뷰
가족헌법 ‘約法三章’… 2차례 가족 분쟁으로 회사가 위기 겪은 뒤 만들어
가족委에서 경영 공동논의… 이혼·바람 피우면 자격박탈, 사위·며느리는 참가 못해
우연하게 만든 굴소스… 1888년 식당 하던 祖父가 굴 삶다가 실수로 만들어
향·맛 모두 좋아 인기 폭발
닉슨 訪中이 급성장 계기… 中서 판다 한쌍 선물하자 굴소스 상표에 판다 넣어
1970년대 美시장에서 히트
매출 규모는 비밀, 비상장기업… 외부공개 안해
매년 두자리 숫자의 성장률 기록한다고만 밝혀
지난달 27일 홍콩 시내에서 북쪽으로 40여분 떨어진 타이포(大捕) 공업지구.
세계 최대 중화요리 소스 전문 업체 '이금기(李錦記)'의 본사 접견실에 올해로 85세를 맞은 리만탓(李文達) 명예회장이
지팡이를 짚고 아들 찰리 리(李惠中·52) 대표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작은 체구의 리 회장은 나지막한 광둥어로 "푼잉꿩람(歡迎光臨·환영합니다)"이라며 기자를 맞았다.
전날 일본 출장에서 막 돌아왔다고 했지만 피곤한 기색을 볼 수 없었다. 그는 "50년 넘게 거래해온 요코하마의 식재료 회사를 방문했다"며
"그들은 이제 사업 파트너가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다. 이금기는 캐세이퍼시픽 항공, 홍콩관광청과 함께 홍콩 대표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많은 회사가 20~30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이금기는 4대째 장인(匠人)의 뚝심으로 125년을 견뎌왔다.
리 회장은 "신뢰가 지금까지 이금기를 지켜온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에는 손잡은 지 96년 되는 회사도 있어요. 한국에선 오뚜기와 1996년부터 17년째 파트너 관계를 유지 중입니다.
저는 자식들과 임직원들에게 늘 '사리급인(思利及人·이익이 남에게도 미치도록 생각하라)'을 회사의 최우선 덕목으로 강조합니다.
1960년 대만 여행 중에 한 서예가로부터 이 글귀를 받았어요. 사리급인에 의거해 상품에 하자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거래 물량 전부를 교환해 줬습니다. 거래 대금을 제때 못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상대방을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렸습니다.
당장은 손해 같지만, 길게 보면 점유율 확대라는 이익으로 돌아왔어요. 현재 세계 굴소스(한국의 간장에 해당) 시장에서
이금기는 80~90%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관계사들이 잘돼야 우리도 살 수 있다, 이것이 상생(相生)입니다."
이금기의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리 회장의 조부 리캄성(李錦裳)은 1888년 광둥(廣東)성 항구 도시 주하이(珠海)에서
어민들을 상대로 허름한 식당을 운영했다. 어느 날 굴을 삶다 깜빡 잊고 밖에 나갔다 돌아왔더니 굴이 갈색 즙으로 졸아 있었다.
그런데 향이 그윽하고 맛도 짭쪼름했다.
굴을 졸인 소스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20년대 초 이금기는 굴소스로 국제무대 공략을 시작했고,
현재는 중국·미국·말레이시아 등의 현지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100여개국으로 하루 100만병 이상 판매하고 있다.
이금기 소스가 1초당 12병 팔려나가는 셈이다. 중국인과 중국 음식이 있는 곳엔 이금기 소스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금기는 창업자 이름에 '가게'를 뜻하는 '기(記)'가 붙어 만들어졌다.
◇가족 불화 막기 위해 '가족 헌법' 제정
이금기는 4대째 내려오는 가족 기업이다. 그러나 가족 경영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두 차례 가족 분쟁으로 회사가
위험한 지경까지 몰린 고비가 있었다. 2세대인 1960년대 리 회장의 아버지 리슈남(李兆南) 세대에선 3형제 중 두 명이
회사를 외부에 매각하려 했고, 반대한 리슈남이 빚을 내 두 형제 지분을 사들여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에 다시 리만탓 회장의 동생이 회사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려 했고, 이를 리 회장이 반대해 법정 분쟁이 벌어졌다.
결국 동생에게 많은 돈을 주고 지분을 사들이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회사를 영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가족 간 화목이 제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2002년 '가족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저와 아내, 자식 4남 1녀 7명이 위원으로 있습니다. 경영에 관한 논의와 함께 가치관을 공유하려는 목적이 큽니다.
사위나 며느리는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가족위원회에서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는 가족 규율을 정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약법삼장엔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이혼을 하거나 바람을 피워선 안 된다는 게 첫째와 둘째입니다. 어길 경우엔 가족위원회 위원 자격을 뺏습니다.
많은 장례식에 다녀 보니 부자들은 어김없이 두 집, 세 집 살림을 차리고, 사후에 남은 가족이 상속 문제로 볼썽사납게 다투는 경우를 가끔 봤어요.
당연히 망인(亡人)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없죠. 회사 역시 하나의 큰 가족이기 때문에 아버지인 최고경영자가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잘 돌아갑니다.
나도 과거에 여러 유혹이 많았지만, 다 이기고 동갑내기 아내와 내년이면 결혼 60주년을 맞습니다(웃음). 또 결혼을 되도록 일찍 하고,
늦게 하더라도 자식을 빨리 낳아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125년간 한 우물을 파다
―품질 관리를 위해선 어떤 노력 하나요.
"'100―1=0'이 저희의 모토입니다. '100개가 괜찮아도 불량품이 한 개 나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죠. 저희는 다른 회사와 달리
주식이나 부동산에는 일절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스 맛과 품질 향상을 위해서만 재투자합니다."
―회사가 급성장한 계기는.
"1932년 본사를 홍콩으로 옮기면서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을 상대로 수출 발판을 다졌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미국으로 이주해 주로 식당을 경영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굴소스를 공급했지요. 또 제가 회장을 맡고 있던
1972년에 중·미 간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판다 한 쌍이 선물로 전달된 것도 중요한 계기였어요.
상표에 판다를 넣은 판다 굴소스를 저렴한 가격에 출시해 미국 시장에서 히트를 쳤지요.
이때부터 굴소스 하나에만 의존하던 제품 라인에 칠리·XO소스·간장을 추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220가지 라인업을 갖추게 됐습니다.
처음 회장을 맡았을 때 18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가 지금은 7000명이 넘습니다."
◇철저한 현지화
―위기 극복 사례가 있나요.
"1980년 중국 본토 시장에 진입했을 때 포장 디자인부터 가격까지 모든 게 잘못된 적이 있었습니다.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진입한 탓이었어요. 그래서 중국에 팔던 품목 수를 50개에서 15개로 줄여
품질과 마케팅 역량을 집중시켰습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판매되는 소스 맛을 지역에 맞게 차별화했고요.
그 결과 베이징에서만 4년 만에 판매량이 10배 증가했습니다. 1999년엔 영국 식품기준청(FSA)이 '이금기 간장에 발암물질이 포함됐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다음 날 '중국 음식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신문 헤드라인들이 뽑혔고, 유럽·라틴아메리카의 판매량이 급감했습니다.
즉시 26만달러(약 3억원)를 들여 제조 공정을 완전히 바꾸고 안전 인증서를 획득했습니다.
소비자들과도 핫라인을 열어 뒀고요. 식품 산업에서 안전 문제는 들불처럼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완전 진화가 중요합니다."
―마케팅 전략은.
“중국·일본·한국 등 주요 시장에 고문 요리사 100여명을 선발해 이금기 소스를 활용한 요리를 공동 개발하고, 조리법을 공유합니다.
한국에선 38년 경력의 여경래 한국중화요리협회장이 고문 요리사로 활동 중입니다. 또 매년 10개국에서 크고 작은 50여개
중화요리 대회를 개최하기도 해요. 지난 1월엔 한국의 요리 전공 대학생들을 홍콩으로 초청해 중화요리 결승전을 열었지요.”
―한국은 정부 주도로 한식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125년의 세계화 노하우를 지닌 회사로서 조언을 해준다면.
“갈비·육회·삼계탕·산낙지 같은 한식을 먹어봤는데 환상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한식이 너무 전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작은 변화로 세계화는 빨리 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슬람교나 유대교 신자가 먹을 수 있는 제품,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사용할 수 있는 굴소스와 고급 짜장 소스를 개발했어요. 2002년부터 일본인 입맛에 맞춘 고추장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리 회장은 매출 등 경영 정보에 대해선 밝히길 꺼렸다. “매년 두 자리 숫자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고만 말했다.
이금기는 비상장기업으로 지금까지 회사 경영 정보를 외부에 공개한 적이 없다. 이금기 관계자는 “이금기의 매출 대비 이익률이
스위스의 세계 최대 식품 기업 ‘네슬레(Nestle)’와 비견될 정도”라고 귀띔했다. 작년 네슬레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5%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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