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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리얼스토리

[집밥 리얼스토리] 첫번째 이야기. 찹쌀 고추장 담그기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제일 좋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는 엄마가 해주는 밥이 맛있다, 건강에 좋다는 뜻이 담겨있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자, 경험에 비춰볼 때 저 말은 '진짜'입니다.


제게 있어 영순여사의 집밥은 먹고나면 왠지 몸보신한 기분이 들게 하는 정말 맛난 음식이거든요^^



어린 시절, 영순여사의 정지(부엌의 방언)에서는 고추장도 된장도 간장도 뚝딱뚝딱 만들어졌습니다.

김치도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깻잎김치, 물김치...철마다 때에 맞춰 밥상에 올라왔었죠

그래서 전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요.ㅎㅎ




지난 1월, 영순여사께서 고추장을 담가야 하는데 날이 계속 안좋다고 걱정하시는 소릴 들었습니다.

 고추장 담글 땐 볕이 좋고 바람이 안부는 날이어야 한다고요.

그래야 맛있는 고추장을 담을 수 있다고.



며칠 후, 고추장을 담았습니다,

햇볕이 좋고, 바람이.....미친듯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남은 고추장이 얼마없다는 걸 확인한 영순여사께서 바로 행동에 옮기신 거였죠.

날씨보다 더 중요한 건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고추장 독이었나 봐요-_-;;






영순여사의 명에 따라 주방 한쪽에 신문지를 넓게 깔고 커다란 고무대야를 가져다 둡니다

그 안에 자루를 넣고 물을 붓습니다.


자루 안에 든 건 엿질금인데요

-지난 겨우내 영순여사와 전 햇볕을 찾아다니며 질금 말리기에 부지런을 떨어야 했어요-


껍질을 안깐 보리를 물에 불린 후 체에 받쳐서 보자기로 덮어두면 싹이 트는 데,

그걸 다시 햇볕에 바짝 말리기를 수십번.

잘 말린 질금을 방앗간에 가져가서 곱게 빻은 게, 바로 저 자루 안에 들어있는 거랍니다.





냉장고에 있던 찹쌀가루를 꺼내와 쇠주걱으로 잘게 부숩니다.


미리 좋은 찹쌀을 구해 방앗간에서 곱게 빻은 걸 냉장고에 넣어둔 거예요.




고춧가루의 매운 냄새 때문에 장소를 밖으로 옮겼습니다.




잘 말려서 곱게 빻은 태양초 고춧가루와 청양고춧가루를 넣어주고.

메주가루, 밀 띄운 가루(밀을 메주처럼 만들어서 빻은 것)를 넣어준 다음

찹쌀가루를 엿질금 물로 삭혀서 끓인 물을 부어줍니다.






살살..가루가 날리지 않게 잘 저어서 섞어줍니다.




휘리릭~휘리릭~

쉐끼~쉐끼~~





점점 고추장스러운 빛깔을 띄기 시작합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매실액을 부어주고,






다시 골고루 휘~휘~ 저어줍니다.






또 매실액을 부어주고.


그렇게 몇번 반복하면서 농도를 맞춰줍니다.







안으로 다시 옮겨서 간을 확인하고 소금으로 조절해 줍니다.

(쉴새 없이 움직이는 손을 피해 셔터를 눌렀건만...ㅠㅠ)






다시 스스슥~~

소금이 골고루 가도록 저어줍니다.






짜잔~!!

매실액을 넣은 찹쌀 고추장 완성!!


빛깔이 발갛게 참 곱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고추장은 바로 먹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한달이상 숙성을 시켜서 먹어야 맛있다고 하네요.




금방 만든 고추장이랑 색이 다른 게 보이시죠?

숙성을 시키면 요렇게 검붉은 빛을 띄게 되요.


숙성된 고추장을 맛보면

청양고춧가루가 들어가 톡 쏘는 매콤함과

매실액으로 달달한 맛이 난답니다.

밥도둑이 따로 없어요.

반찬을 만들어도 맛있구요.


매운 걸 잘 못 먹는 외국친구들도

요 찹쌀 고추장은 정말 맛있다며

집에 돌아갈 때 싸 간적도 있답니다

ㅋㅋㅋ



만들기는 금방인 것 같은데,

재료는 몇달 혹은 1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장을 담근다는 게 집안의 행사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죠?ㅎㅎ







고추장의 농도는 어떻게 맞추냐는 내 질문에

언니가 저렇게 세워서 안쓰러지면 된 거라고 하길래.

몇번 시도 끝에 인증샷까지 남겼는데

이 개운치 못한 기분은 무엇 때문일까요ㅡ.,ㅡ

(자꾸 쓰러져서 언니 도움으로 후다닥 찍은 거랍니다ㅋㅋ)


좀 부끄러우니까 사진 크기도 쭈글쭈글...







어제 마당에 나가보니

볕이 좋다고 고추장 독이 나란히 서서 일광욕을 하고 있더라구요.


영순여사께서 직접 사오신 망을 쓰고서요.

장독대에 있는 독들 중에 왠지 제일 정감가는 고추장 독들.

다행히 맛있게 잘 담가져서

영순여사의 기분도 맑음! 쨍쨍하시답니다~ ^^